채제공(蔡濟恭, 1720∼1799) 선생이 64세일 때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 이명기(李命基)가 그린 초상화(肖像畵)이다.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는데 오량금관(五梁金冠)을 쓰고 관리가 조정(朝廷)에서 입는 의복인 붉은 조복(朝服)을 입었으며, 홀(笏)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선생은 본관이 평강(平康); 호는 번암(樊岩);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1743년 문과에 급제하여 영의정까지 올랐다. 관직에 있으면서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였으나 제도 개혁보다는 운영의 개선을 강조하여, 중간 수탈과 부가세 폐단의 제거 등 국가 재정 부족의 타개를 급선무로 생각하였다. 또한 사회 안정을 위해 사족(士族) 우위의 신분 질서와 적자(嫡子)와 서자(庶子)의 구별을 엄격한 의리(義理)로서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정통 성리학의 견해를 유지하면서도 포용적인 사상 정책을 전개하였고, 문장과 시(詩)에 능하여 조정의 편찬 작업에 여러 차례 참여하였다. 순조 때 유태좌(柳台佐)가 청양에 영각(影閣)을 세웠고, 묘소는 경기도 용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