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宣祖) 때의 충신 양지(梁誌)를 향사하는 사우(祠宇)이다. 양지(?∼1592)의 본관은 남원(南原)이며 눌재 양성지(訥齋 梁誠之)의 후손이다. 임진왜 란 때 경기도 관찰사 심대(沈岱)의 종사관으로서, 삭녕(朔寧)에서 왜군의 공격을 받아 순 절하였다. 1796년(정조 20년)에 이조판서로 중직 되었고, 충민(忠愍)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으며 충절을 기리기 위한 붉은 문(門)인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1891년에 온양(溫陽)에 사우를 지었으나 허물어졌고, 1959년에 후손들이 모곡리에 사우 를 옮겨지어 위패를 모셨다. 사우는 솟을문 형식의 삼문(三門) 안에 지었으며 회백색의 돌 담을 쌓았고, 앞에는 최근에 세워진 신도비(神道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