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하나되는 고운식물원.
답사기 작성일 : 2014년 8월
일상이 지칠 땐 자연을 찾는 것만큼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것은 없다.
다양한 야생화와 나무들이 색색으로 군락을 이룬 사이로 새들이 지저귄다.
숲 속의 하모니에 취해 거닐다 보면, 내 몸과 마음은 자연의 향기로 채워진다.
소음과 미세먼지 탓에 창문 한 번 열기 힘들다. 창 밖의 풍경은 변함없는 회색도시이다. 가끔씩 책상 위로 들어오는 강렬한 햇빛에 잊었던 무언가를 상상하며 바라본다. 그래, 낭만을 잊고 있었다. 온 세상이 고운 색을 입기 시작했는데, 이 계절의 낭만을 즐기지 못하면 조금 억울할 것 같다. 그렇게도 뜨거웠던 여름은 말없이 떠나가고 가을이 왔다. 가을도 점점 깊어가고, 큰 일교차는 몸도 마음도 쓸쓸하게 한다. 부재했던 낭만을 찾으러 그곳으로 향한다.
산 좋고 물 맑은 땅, 청양에 그 이름이 수줍게 고운, ‘고운식물원’이 있다. 따뜻한 가을빛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식물원으로 향한다. 청양 읍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입구에 있는 ‘고운’을 형상화한 석상이 나를 반긴다. 산 하나 전체가 식물원이라는 설명에 관람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갑자기 초조해진다. 이 어리석음도 잠시 청량한 공기가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들며 짙은 가을의 풍경으로 들어간다.
산책로 입구에는 빨간 옷을 입은 화려한 단풍들이 인사를 한다. 화려한 바람개비와 이곳에 어울리는 문구가 적힌 푯말들이 인상적이다.
‘어느 길로 가도 좋습니다.’ 그 푯말의 조언에 따라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향한다. 현재 고운식물원은 ‘야경 빛축제’가 열려 화려하게 밤을 수놓을 장식물이 식물의 곁을 지켜 외롭지 않아 보인다. 가을과 겨울에 피지 않는 꽃을 대신할 화려한 조명들이 그 빈자리를 메울 것이다.
산책로의 어느 단풍나무에는 그 동안 봤던 통통한 단풍잎이 아닌 가느다란 손가락 같은 잎이 달려있다. 이곳엔 단풍나무가 390여 종이나 된다니 가을 단풍을 즐기기엔 제격이다. 파르르 떨리는 잎에 마음도 떨리기 시작한다. 화려한 붉은 단풍에 취해 고개를 돌리니 흙 곁에는 화사하고 풍성한 겹꽃의 달리아가 길 한 폭을 장식하고 있다.
30여 개의 정원을 갖추고 있는 고운식물원은 테마별로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야생화와 다양한 조각상들이 어우러져 사색하는 공간으로 알맞은 ‘야생화원 및 조각공원’은 미술관에 온 것처럼 운치를 더해준다.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 오솔길을 걸으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분수쇼가 한창인 ‘수련원’에 도착하니 한 가족이 기념촬영 중이다. 여름에 왔을 때 연꽃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데, 가을 풍경도 참 매력적이라며 좋아하신다. 어느 길로 가도 좋고, 언제 와도 좋은 곳이 자연인가 보다.
고운식물원은 조각공원, 습지원뿐만 아니라 잎에 꽃이나 무늬가 들어가 있는 식물로 구성된 ‘무늬원’, 꽃향기 가득한 ‘장미원’을 비롯해 비비추원, 목련원 및 원추리원 등 저마다의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정원들이 있다. 또한 가족과 어린이 야외활동 공간인 ‘잔디광장’, 그 밖에도 ‘단풍나무원’, ‘무궁화원’, ‘수국원’ 등의 테마공원을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미니 동물원과 ‘앵무새’ 관람쇼도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고,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앵무새에게 직접 먹이를 주며 관찰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가족 단위로 찾아오는 관람객과 학생 단체 관람객들이 증가함에 따라 이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손수건 꽃물들이기, 허브비누, 나무곤충, 압화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과 매년 여름이면 방학을 맞아 어린이들이 식물들을 관찰하고 숲을 체험할 수 있는 1박2일 과정의 생태체험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그 밖에도 민속놀이 체험장, 방갈로 같은 숙박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추억을 새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식물원을 둘러본 후 원내에 있는 식당에서 보리밥과 칠갑산 고사리, 버섯, 도토리 묵 등도 맛볼 수 있어 오감만족과 자연치유의 기능을 모두 만족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사계절 모두 매력적으로 변하는 이곳은 봄꽃을 보지 못하더라도 여름 식물을 볼 수 있고, 여름을 놓쳤다면 가을의 식물을 볼 수 있다. 겨울로 향하고 있는 깊은 가을인 현재에는 화사한 꽃보다는 익어가는 화려한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들이 나의 마음을 유혹한다.
삡삐비비-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온다. 지나가던 이곳 동물원의 새박사님이 그 새소리의 주인공은 ‘오목눈이’라 말씀하신다. 가을 붉은 빛이 그들을 유혹한 걸까. 삼삼오오 귀엽게 모여 지져귀는 오목눈이들이 이 정취를 더한다.
산악지대의 특성을 살려 조성된 이곳은 조금 높은 곳으로 오르니 시원하고 상쾌한 기운이 몸 속 깊은 곳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가만히 걸음을 멈춘 채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본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나뭇잎소리, 풀바람 소리, 새소리 등 자연이 들려주는 오케스트라에 몸과 마음이 향기롭게 채워진다.
역시 제일 좋은 향은 자연의 향이다.
여러 정원을 지나 그들이 들려주는 소리에 취하다 보니 산의 정상 ‘팔각정’ 전망대에 도착한다.
탁 트인 식물원 전경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우리나라 식물원 전망대 중 최고라고 자부할만하다.
우리 고유의 멋을 담은 전망대는 식물원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고, 계절별로 식재된 야생화와 전통 석조물이 조화를 이루어 주변 관광객들의 기념 촬영 세례가 이어진다.
저 멀리 가을 옷을 입은 산과 전망대 아래 알록달록 식물들이 내 마음에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가을 향기로 나를 가득 채우니 슬며시 미소가 스며든다.
울퉁불퉁 자갈길과 흙길, 폭신한 잔디밭 등 발길을 옮길 때마다 전해지는 땅의 감촉을 느끼며 자연이 내는 소리를 들으니 내 안에 꾹꾹 눌러 담겨 있던 번잡함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숲 속 대자연은 그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마음을 유혹한다. 발길 닿는 곳마다 매력을 내뿜으니 2시간도 부족하고 고운식물원의 하루는 마냥 짧기만 하다.
겨울을 맞아 ‘고운식물원’에서는 화려한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빛축제는 11월1일 개장해서 2월 9일까지 진행되며, 밤의 숲을 빛으로 수놓으며 관람객을 초대한다.